구의역 10년, '위험의 외주화' 끝났나
2026-05-29 21:47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승강장 한편에는 10년 전 열아홉 청년의 꿈이 멈춰 선 자리가 있다. 2016년 5월 28일, 스크린도어 수리 신고를 받고 홀로 현장에 투입됐던 김군은 열차를 피하지 못한 채 짧은 생을 마감했다. 사고 당시 그의 가방에서 발견된 것은 고장 난 문을 고칠 연장들과 차마 뜯지 못한 컵라면 하나였다. 끼니조차 챙길 여유 없이 '1시간 이내 출동'이라는 가혹한 속도 경쟁에 내몰렸던 청년의 유품은 효율과 비용만을 앞세웠던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전 국민적인 공분을 불러일으켰다.당시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은 인력 부족을 방치한 채 하청업체에 위험한 업무를 떠넘긴 구조적 모순에 있었다. 서울메트로와 용역업체 사이의 계약에는 지연 배상금 규정이 존재했고, 현장 노동자들에게는 '2인 1조'라는 안전 수칙보다 '신속한 처리'가 우선시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사고 직후 사측은 노동자 개인의 과실로 책임을 돌리려 했으나, 법원은 위험을 외주화하고 감독을 소홀히 한 원청의 책임을 명확히 판시했다. 이 판결은 이후 노동 현장의 안전 관리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게 만드는 법적·사회적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구의역 사고 이후에도 일터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또 다른 김군'들의 행렬은 멈추지 않았다. 태안화력발전소의 김용균, 평택항의 이선호 등 수많은 청년 노동자가 비슷한 구조적 결함 속에서 스러져 갔다.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고 생명안전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하는 등 제도적 장치는 마련되었으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비용 절감과 효율성이 안전 수칙을 압도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법의 테두리 밖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숙제로 남아 있다.

이날 행사는 김군을 포함해 산업 현장에서 희생된 모든 노동자를 호명하며 그들의 삶을 기리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참석자들은 안전한 노동 환경이 보장될 때까지 감시와 목소리를 멈추지 않겠다는 결의문을 낭독했다. 10년 전 청년의 가방 속에서 나온 컵라면은 이제 단순한 유품을 넘어 노동 존중 사회를 향한 상징이 되었다. 구의역 9-4 승강장의 시계는 10년 전에 멈췄을지 모르지만, 그날의 기억을 품은 우리 사회의 안전을 향한 발걸음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기사 최유찬 기자 yoochan2@lifeand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