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하청 고리..'하청직원 사망' 서부발전 등 압수수색
2025-06-16 15:49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6월 16일, 김 씨 사망 사고와 관련해 한국서부발전 본사와 한전KPS 본사, 태안화력 내 한전KPS 태안사무처, 2차 하청업체인 한국파워O&M 사무실 등 총 4곳에 대한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인력 80명이 투입된 대규모 수색을 통해 수사당국은 발주처와 하청업체 간 계약서, 근로계약, 안전지침 문서 등을 확보하고 관련 법 위반 여부를 본격 조사하고 있다. 수사 대상에는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등이 포함되며, 아직 입건된 이는 없다.
사고의 본질은 복잡한 다단계 하청 구조와,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노동 안전 시스템의 고질적 문제에 있다. 김 씨가 사망한 선반 작업은 한전KPS가 자체 평가한 위험 점수에서 20점 만점에 불과 4점에 머물렀다. 2023년엔 3점으로 더 낮았다. 이는 기계 회전체에 끼일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용 가능한 위험’으로 분류됐다는 뜻이다. 한전KPS는 "최근 5년간 해당 작업으로 인한 사고가 없었다"는 이유로 저평가했지만, 노동부 지침상 사고 빈도만이 아닌 작업 노출 빈도, 아차사고 발생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적절한 평가라고 보기 어렵다.
사고 예방의 마지막 방어선이 되어야 할 TBM(Tool Box Meeting)도 사실상 무력화돼 있었다. 사고 당일까지 김 씨는 TBM을 혼자 작성했고, ‘회의’에 참여한 동료나 관리감독자는 없었다. 매일 똑같은 위험 요소가 반복 기재돼 있었고, 관리감독자 서명 역시 실제로 안전 관리를 수행하지 않은 노동자가 서명만 해준 경우였다. 현장소장은 사고 기계에 대한 지식조차 없었다. TBM이 형식적 문서로 전락한 현실은 현장의 위험 소통이 얼마나 단절돼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김 씨의 업무 장소도 원청 안전관리자의 눈길에서 벗어난 사각지대였다. 현장점검은 주로 생산설비 중심이었고, 김 씨처럼 정비동에서 홀로 부품을 가공하던 노동자는 점검 대상에서 배제됐다. 김 씨가 속한 하청업체는 정원 25명의 소규모 업체로 별도 안전관리자도 두지 못한 상황이었다. 발전소라는 대형 설비 공간에서 수천 명이 일하지만, 정작 가장 위험한 작업자들은 조직의 보호망 바깥에 있었다.
위험성 평가 과정에서도 구조적인 문제가 드러난다. 노동자들이 위험 요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도 개선은커녕 오히려 점수를 낮춰 ‘수용 가능한 위험’으로 처리하는 일이 반복됐다. TBM 회의에 불참하거나 자리를 비우면 ‘반성문’을 쓰게 하는 등 안전관리는 통제의 수단으로 작동했다. 실제로 대책위가 공개한 반성문에는 화장실 용무로 자리를 비웠다는 이유로 ‘오해를 풀기 위해’ 작성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이런 현실은 김용균 씨 사망사고를 계기로 마련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이후에도 현장의 변화가 미미했음을 방증한다. 당시 정부는 연료·환경운전 노동자만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정비 노동자에 대한 공영화 권고는 수용하지 않았다. 결국 경상정비 업무는 여전히 외주화된 상태로 남아 있었고, 김 씨는 이 체계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게다가 민주당은 김 씨 사망 닷새 전, 발전소 비정규직 정규직화 협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해 노동계의 반발을 샀다.
전문가들은 발전소 사고의 반복 원인을 뿌리 깊은 외주화와 수직적 구조에 두고 있다. 위험은 쪼개지고, 책임은 흐려지며, 노동자는 고립된다. 안전에 대한 수평적 소통이 단절된 현장에서는 제2, 제3의 사고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발전소 유지·보수 업무를 공영화하고, 안전관리 책임을 명확히 해야만 비로소 변화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김충현 씨의 죽음은 단순한 사고가 아닌, 대한민국 산업현장의 구조적 병폐가 낳은 또 하나의 비극이었다.
기사 최유찬 기자 yoochan2@lifeand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