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소비 한파, 연휴 소비마저 사라져..
2025-05-28 15:09
통계청이 28일 발표한 ‘나우캐스트’에 따르면, 어린이날과 대체공휴일이 겹친 5월 3일부터 9일까지의 일주일간 국내 신용카드 사용액은 전년 동기 대비 12.7% 줄었고, 전주와 비교하면 무려 18.4%나 급감했다. 같은 기간 온라인 소비 역시 전년 대비 5.1%, 전주 대비 18.9% 하락했으며, 오프라인 가맹점 카드 매출은 각각 13.4%, 22.7%씩 줄어들었다. 이처럼 소비자들의 씀씀이는 연휴 기간임에도 전혀 살아나지 못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6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연휴 소비가 얼마나 늘지가 최대 관심사”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통계가 보여준 실상은 기대와 정반대의 결과였다. 이번 소비 부진은 단순한 일시적 현상을 넘어 한국 경제 전반에 걸친 내수 침체의 심각성을 보여주며, 향후 금리 정책과 성장률 전망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오는 29일 발표 예정인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5%에서 대폭 하향 조정할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기준금리 역시 현재 연 2.75%에서 2.50%로 인하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시장 역시 이 같은 방향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내수 침체가 구조화된 양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올해 1분기 민간 소비는 의료와 오락·문화 등 서비스 분야의 지출 감소로 인해 전 분기 대비 0.1% 줄었다. 이는 2023년 4분기 0.1%포인트였던 민간 소비의 성장 기여도가 올해 1분기에는 0.0%포인트로 하락한 것과 맞물려 더욱 우려를 낳고 있다.
정부 또한 이러한 경제 흐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6일 발표한 최근 경제 동향 자료에서 “소비·건설투자 등 내수 회복 지연과 함께 미국의 관세 부과 등 대외 여건 악화로 경기 하방 압력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는 단순히 소비의 일시적 위축을 넘어, 구조적이고 복합적인 문제로 확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경제전문 국책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역시 지난 14일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6%에서 0.8%로 대폭 낮췄다. KDI는 그 배경에 대해 “정국 불안과 대외 불확실성 탓에 소비 심리가 위축돼 내수 회복이 지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숙박과 음식 등 서비스 소비의 둔화가 두드러진다고 분석하면서, 전반적인 민간 소비 증가세가 정체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번 황금연휴 기간 소비 부진은 단지 한 주간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소비 위축 현상을 여실히 드러낸 사례로 볼 수 있다. 고금리와 고물가에 더해 정치적 불안과 대외 무역 여건 악화가 겹치며 소비자 심리는 더욱 위축되고, 내수 시장은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와 한국은행은 보다 적극적인 경기 부양책과 소비 진작 방안을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됐다.
전문가들은 소비 회복 없이는 경제 성장의 회복도 요원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단기적 부양책을 넘어 중장기적인 소비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어린이날마저 소비가 줄어든 현실은 한국 경제가 당면한 위기의 단면이며, 향후 경기 방향성과 정책 대응의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기사 안민성 기자 anmin-sung@lifeandtoday.com